約取煙波作三分<약취연파작삼분>
안개에 취해 세쪽으로 나누어 가지자고 약속하다 (아마 정약용?)

졸업식 전날 연구실에 나와 미루던 일을 하다가 대구에 내려간 친우와 텔레그램으로 묵직한 수다를 떨었습니다. 그 끝에 예전에 들었던 한시 구절을 다시 물어보았고 카카오톡 상태창에 그 구절을 옮겨다 놓았습니다. 몇 주일 전 카톡 상태 메시지에 ‘밖으로’라고 썼다가 ‘뛰어봤자 벼룩’신세로 같은 동네로 돌아온 후 그 항목을 며칠 비워두고 있다가 겨우 채워 넣은 문장입니다.
유학생활 중 예전의 동학들이 다 흩어져 여기저기에서 몸 고생 마음 고생들을 하는 모양새를 보고 다른 이유에서가 아니라, 다시 함께할 기약없이 흩어져 각개격파를 당하는 것이 어른이 되어가고 무기력해지고 변해가는 큰 이유이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시간이 흘러 술자리에서 안개를 쪼개 나누어 가지자는 윗 구절을 들었을 때 술이 잔뜩 취해 불가능한 약속을 진심으로 나누어 가지고 돌아갔던 이들이 있다는 바로 그것이 나의 힘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같이 공부하고 같이 발표를 하고 같이 책을 쓰고 같이 무언가를 바꾸어보자는 약속이 멀어지는 듯 보일지라도, 밖으로 나가 다른 곳에서 폼나게 표범가죽 추장처럼 살아보겠다는 포부가 날아갔을지라도, 작삼분 하자는 약속을 나누어 가진 이들이 여전히 있습니다. 계속 술과 안개에 취해 살아갈 순 없더라도 그 약속을 나누어 가진 이들이 예전에 있었고 또 지금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