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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수저 은수저 동수저 그리고 흙수저론은 일견 계급계층론의 대중적 변형으로 보인다. 그리고 부모의 소득수준과 지위가 자녀의 삶의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은 그리 새삼스러운 주장도 아니다. 그러나 흙수저론이 갑자기 부상하고 널러 퍼졌다는 사실 자체를분석하고자 한다면 어떨까?
먼저 흙수저론은 현대 한국에서의 계급간 상승/탈락의 역동성 특히 하층의 상승가능성이 현격히 줄어들었다는 대중적 인식을 반영한다. 혹자는 이제 한국사회가  신분제 사회가 되었다는 과격한 주장을 펼치기도 한다.

위의 인식을 받아들인다면 두 가지 과제와 마주하게 된다. 첫째, 원칙적으로 신분제가 타파된 사회에서 어떻게 신분제적 질서와 같이 보이는 현상이 일어날 수 있는가? 둘째, 비 신분제 사회에서의 신분제적 현상이 흙수저론의 핵심이라면 위의 은유는 무엇을 보여주고 또 은폐할 것인가?  두번째 질문부터 간략히 답한다면 흙수저론은 그 강렬한 인상과는 달리 매우 간단히 격퇴되고 무화될 수 있다. 실제 많은 신분제 사회에서 하층의 예외적으로 뛰어난 개인을 상층부로 편입시킴으로써 하층의 불만을 무마시킨 많은 예가 있다. 즉 흙수저론은 <능력있는 개인이 출생한 조건의 제약으로 인해 계급계층 상승이 좌절된다>는 식으로 이해되서는 안된다.

문제의 핵심은 비 신분제 사회에서 신분제와 같은 현상이 어떻게 진행될 수 있는가에 있다. 그 실마리는 학교나 각종 문턱을 규정하는 제도가 세련화되고 정당성을 확보해가는 과정 – 이것은 비 신분제 사회의 특징이다 – 과 부모에서 자식으로 세습되는 이권과 자질의 불평등함 – 이는 신분제적 현상 이다 – 이 함께 함께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어떻게 세습이 계속 세련화되는 제도의 규칙을 거스르는 것이 아니라 충실히 따르며 진행될 수 있는가?

그 실마리는 제도의 진화가 일종의 비동시대성을 지속적으로 만들어낸다는 사실, 다시 말해 지속적으로 변모하는 제도의 요구사항에 따라 특정 개인의 계급상승을 위한 실천들이 <유통기한>을 지닌다는 점에 있다. 흙수저들은 유통기한이 지나거나 거의 끄트머리에 있는 ‘이미 알려진’ 전략을 따를 것이요,  같은 자질을 지닌 금수저들은 새로운 전략을 해당 분야의 내부자인 부모 세대로부터 더 빨리 익힐 것이다. 새로운 세습은 제도의 세련화와 진화에 따른 비동시대성을 자기편으로 삼고 자연스럽고 정당한 세습에 성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