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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과 지식 연구회(약칭 현지회)는 〈창이자 거울로서 현장에 찍힌, 발자국임을 주장하는 것들의 역사와 과학〉을 모토로 삼는 신생 연구모임이다. 인류학에서 현장은 타자의 삶과 문화를 들여다보는 동시에 자아를 비추는 구조물로서, 여타 사회과학에서와 마찬가지로 학자의 권위와 지식의 정당성을 보증하는 통행증의 구실을 해왔다. 흔히 인류학자들은 계량사회학자들에게 ‘현장(=필드)이 없다’고 비판하지만, 계량사회학자들은 역사사회학자들에게 동일한 비판을 던진다고 한다. 역사사회학자들 역시 다시 누군가에게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한편에서 이들 모두는 ‘학문과 현장의 괴리’라는 사회적 성토의 대상이 되는데, 동시에 사회와 학계 양쪽에서 현장의 권위는 지속적으로 하락해왔다. 현장이라고 불리는 것들의 이런 권위와 정당성은 어디에서 와서 어떻게 그 일을 하게 되었을까? 우리의 시대, 그리고 앞으로의 시대에, 도대체 현장은 어떤 의미가 있고 무슨 일을 해야만 할까?

우리 작업의 기본구도는 다음과 같다. 우리가 보는 현장이란, 지식의 탄생지점으로서 거의 모든 인문사회과학이 필연적으로 경과하게 되는 (즉, 인류학자들에게만 고유한 경험이 아닌) ‘인류학적 조우’의 궤적이라는 수직축, 그리고 지식들 간의 경합을 통해 그것들 간에 위계가 만들어지는 ‘영역전쟁’이라는 수평축, 이 두 축이 교차하는 지점에 붙여지는 또 다른 이름이다. 인류학자의 주관이나 입장과 관련한 자아 성찰적 논의에 머물렀던 ‘인류학적 조우의 현장’에 대한 관심은 이 인식에 기초해 새롭게 재탄생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현장을 통한 대상의 (재)발견과 규정, 그 문턱과 경계의 설정이 가능해지는 객관적 과정을 포괄해야 하며, 현장이 현장을 떠나 여행하는 지식의 통행증(=현장존재/부재증명) 구실을 하게 되는 과정에 대한 비판적 (재)인식을 촉구한다.

우리의 문제의식에 따르면, 현장의 존재ㆍ인식ㆍ재현은 그 자체로서 학문은 물론 세계 전체를 움직여왔으며, 그 운동의 방향과 속도까지 규정하는 힘이 된다. 그렇게 축적된 지식들이 항상 현장에 개입하는데, 그럼에도 현장이 그 지식들로 환원되지 않는다면, 현장과 지식의 관계는 항상 조우라는 계기를 경유하여 우연적으로 (즉, 필연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결부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현장-지식-조우라는 세 항 사이의 관계에 대한 탐구가 모든 연구의 전제이자 종착점이 된다. 이런 인식을 토대로 인류학, 나아가 전체 학문체계 안에서 현장이 자리매겨지고 또 그것이 학문체계를 규정하는 방식을 탐구하며, 이를 통해 다시 인문사회과학 내에서 현장이 지니는 의미와 힘을 재정립, 복권하려는 것이 현지회의 기획이다.

현지회는 수년 간 관련 문제의식을 놓고 수다를 떨어온 3인의 발의에 의해 2014년 6월 24일 그 준비모임을 가졌으며, 보름 남짓의 예비논의를 거쳐 같은 해 7월 10일 창립 세미나를 열었다. 이후 2016년 9월말 현재까지 월 1~2회씩 모두 34회의 연구모임을 개최했다. 그 기간 구성원에도 다소 출입이 있었던 가운데, 현재 7명의 회원이 활동 중이다. 회원의 자격을 인류학자로 제한할 생각은 없으나, 당장은 인류학자들이 중심을 이룬다. 현지회의 정례 연구모임은 발제와 토론으로 이루어지는 세미나를 기본 줄거리 삼아, 필요에 따라 회원과 외부 연구자의 발표를 조합하고 있다. 또한 현지회는 패널을 구성하여 연 1회 공동연구의 결과를 발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현지회 모임의 세부 경과는 당 연구회 홈페이지(www.fieldology.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당장 이 소식지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이를 간략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회부터 13회 모임까지는 〈한국인류학과 동아시아인류학에서 인류학적 조우와 영역전쟁〉을 주제로 한 토론을 통해 모임의 문제의식을 가다듬었으며, 14회부터 22회까지는 〈공동체에 대한 병리학적 상상〉을 공동연구의 주제로 삼았다. 전경수, 사카노 토오루, 스토킹, 클리포드, 굽타 & 퍼거슨, 비엘, 그레이버, 슈렘프, 히메네즈, 문중양, 네그리 & 하트, 아감벤, 해리스, 캉길렘, 에스포지토 등이 이를 위한 검토의 대상이 되었다. 이 결과를 토대로 2015년 가을 한국문화인류학회 학술대회에서 이루어진 공동발표의 주제는 〈공동체에 대한 병리학적 상상과 임상으로서의 현장〉이었다. 23회 이후 34회 현재까지는 〈공동체에 대한 친족적 상상과 수직각적 유비〉를 주제 삼아 카르스텐, 히메네즈, 에스포지토, 미야지마 히로시, 비베이로스 드 카스트로, 데스콜라, 스트레이선, 살린스 등의 관련 논의를 검토했다. 이를 토대로 2016년 가을 학회에서는 〈친족적 상상을 통한 공동체/경계 만들기〉를 주제로 한 공동발표를 예정하고 있다.

위 공동연구ㆍ발표의 주제들에서 드러나듯, 우리는 사회과학에서는 다소 낯선 ‘상상(력)’이라는 표현을 통해, 현장을 규정하고 안정화하는 여러 힘과 그 배치상황을 추적해왔다. 이는 ‘현장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 결코 종결될 수 없다는 우리의 입장을 확인하는 표지(標識)이기도 하다. 현장은 연구의 서두에 덩그러니 놓여 연구를 정당화하는, 자명한 것으로서 이미 주어진 단위일 수 없으며, 그 구성 자체가 문제의 본줄기가 되어야 한다. 지금까지의 공동연구를 잇는 향후 계획으로서, 현지회는 2017년 가을의 한국문화인류학회 학술대회에서 〈법, 공동체, 체계〉를 주제로 한 패널을 구상하고 있다. 관련 세미나는 2016년 11월부터 시작될 예정이다. 학회 회원 여부 및 전공ㆍ소지학위 불문, 관심 있는 여러분의 열화와 같은 성원과 참여를 기다리고 있다. 현지회의 기획에 관심을 가진 분들께서는 안승택 간사(lacuna@empal.com/010-3299-4934)에게 연락 주시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