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2병

위 동영상은 페북에서 한 동학이 공유한 것이다. 중2병 캐릭터가 무엇인지는 동영상을 보면 알 수 있으리라. 자신이 이 세상의 비밀을 아는 선택받은 자라는 자의식 속에서 주위에서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반복하는 (주로) 어린 남학생 캐릭터를 칭하는데 2010년 이후 일본 애니메이션의 가장 중요한 캐릭터다.

그 동학은 중2병 캐릭터에게 호소하는 십중 팔구 관심과 애정을 지닌 여친 캐릭터의 말이  [지식인들]에게도  통용된다는 위트있는 코멘트를 남겼고, 그에 대한 나의 답변은 “중2병[혹은 학자들만의 현학적 토론과 고민들]의 허망함을 알고 있다고 해서 그와 나는 저 동영상에서 듣는 쪽이지 말하는 쪽은 되기 힘들 것”이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그 역전은 불가능할까?

“이거 내가 꼰대질 하는 거 아닌가?”

40을 훌쩍 넘은 나도, 지주님도, 문어도 대화 도중 자주 “내가 한 말이 꼰대같은 소리일지는 모르겠지만…” 이라는 단서를 꽤 많이 단다. 그리도 많은 경우 그에 대한 대답은, “에이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이죠. 꼰대라니요.”이다.  이러한 대화는 꼰대라는 단어에 여러 겹이 있음을 보여준다. 첫째, 명명백백하게 자신의 권위와 경험을 내세우면서 아랫 세대를 부당하게 폄하하고 공격하는 행위, 둘째, 누군가가 조언을 요청하지도 않았는데 그의 프라이버시 영역에 대해 충고하거나 개입하는 행위, 셋째, 누군가를 가르치거나 조언하려는 행위 일반. 그리고 마지막으로 – 이것이 핵심적인데 – 이전까지 당연히 할 수 있고 해야하는 조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듣는 상대방이 그 행위를 보고 가지게 될지도 모르는 나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 앞의 세 가지가 진짜 나쁜 꼰대질이 통상적 가르침(문화전승행위 일반?)과 같은 스펙트럼 상에 놓여 있음을 보여주는 동시에 꼰대질의 다의성(누군가에게는 꼰대질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다른 이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의미에서) 을 드러낸다면, 마지막 겹은 꼰대질이란 말이 널리 퍼지면서 만들어진 진정 새로운 도약의 지점이다. 그 마지막 층위가 없었다면 첫번째에서 세번째로 이어지는 겹은 “좋은 약은 입에 쓰다”는 식으로 재통합될 것이고 지금의 성찰적 기능을 수행할 수 없을 것이다. 꼰대질이라는 말은 이전까지 있어왔지만 서로 묶이지 않는 층위를 다시 묶어내는데 그 지점은 충고, 훈수, 가르침이라는 층위와 나란히 겹히는 두번째 겹의 공간을 만들어낸다. 이것이 꼰대질의 성찰적 기능이다.

다시 중2병으로

왜 일본애니메이션에서 2010년대에 중2병 캐릭터가 만연하는가에 대한 많은 분석이 있을 것이라 믿는다. 그런데 80년대부터 애니메이션을 보아왔고, 그래서 정규 일본어 교육은 한번도 받은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위의 동영상의 대부분이 말을 이해하고 그러나 일본어로 쓰여진 간판은 잘 읽지 못하는 내가 보기에, 중2병 캐릭이 하는 짓은 그다지 달라진 것이 없다. 건담, 원피스, 나루토, 에반게리온 등의 소년만화 애니메이션에서 주인공은 거의 대부분이 10대 학생들이었고, 특별한 능력을 타고 났고, 세상과 지구를 구해냈다. 중2 정도의 나이의 비범한 주인공들이 30년 가까이 계속 지구와 세계를 구해왔던거다. 중2병 캐릭터란 – 위에서 언급했던 꼰대질 처럼 – 일본 소년 만화와 애니메이션이 한 세대 동안 만들어왔던 계열과 나란히 겹치는 두 번째 겹이다. 맨 위의 동영상에서 처럼 일본 애니메이션은 지금까지 자신들이 구축해왔던 비범한 어린 영웅들이 실상은 자기 혼자만 잘났고, 망상에 빠져있는 환자일 수도 있다는 점을 말하기 시작했다. 건담의 아모르 역시 “경험도 별 생각도 없는 놈이 뭐가 잘났다고…”라는 주위의 평가를 들었을 테니 말이다. 중2병은 일본애니메이션이 스스로 만들어낸 성찰의 틈이다. 그 틈을  포함하는 소년 영웅들의 스토리는 이전보다 더욱 풍요로울 것이다. 어떤 이는 스스로가 병자임을 받아들이고 스스로를 봉인할 수도 있고 그 중 누군가는 그 편견을 뚫고 진정 세계를 구하기도 할테니 말이다. 여러 겹의  언어가 만들어내는 성찰성을 포함한 판타지는 현실보다 더 현실적이지 않은가?